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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장수사진관 시현하다 레코더즈 (ip:) DATE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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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장수사진관 

By 인혁 에디터


차가움, 외로움, 쓸쓸함. 영화나 소설에서 우리가 봐온 죽음은 늘 어딘가 어둡고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두렵다고 마냥 피할 수는 없기에, 죽음을 향한 우리들의 자세도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죽음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망설이던 예전과는 달리, 내가 원하는 죽음은 무엇인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남들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두려움의 원인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이기 때문이 가장 크다고 해요. 분명 누군가와 영원히 헤어지는 일은 너무 슬프겠지만, 오히려 우리 모두가 거쳐야 하는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의 두려움도 점점 작아지지 않을까요? 


시현하다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준비한 특별한 프로젝트, <찾아가는 장수사진 촬영 프로젝트>는 이런 죽음을 향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위해 시작됐어요.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 오늘 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9월 3일, 하늘에 구름이 높게 떠오른 토요일. 두 시간을 달려 시현하다가 도착한 곳은 평택에 위치한 재활주간보호센터. 이른 주말 아침부터 이곳을 찾게 된 이유는 바로 한국장례문화진흥원과 함께 준비한 ‘찾아가는 장수사진 촬영 프로젝트’를 위해서였어요.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어르신들의 ‘나를 위한 이별 준비’를 도와드리는 것. 그 준비를 위해 가장 먼저 이별 준비 노트를 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별노트는 무엇인가요?


이별 준비 노트는 내가 원하는 장례방식과 남기고 싶은 말들을 작성하고,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전함으로써 함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진 노트에요. 노트에는 장례 형식이나 수의 같이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자세한 내용부터,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적을 수 있는 칸이 준비되어 있어요. 


평소 하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다 보면, 두렵게만 느껴졌던 죽음과 조금은 더 친해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노트 작성을 마치신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아 꽃단장을 하시며 촬영을 준비해 주셨어요. 직접 칠한 매니큐어를 자랑해 주시던 분들도 계셨답니다. 


시현하다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바로 ‘장수사진’ 촬영! 시현하다의 장수사진에는미리 사진을 찍어두면 더 오래 오래 장수하실 수 있다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어요. 


어르신들에게 오늘 촬영하시는 사진은 영정사진이라기보다는 지금의 순간을 더 예쁘고, 오래오래 기록하시라고 찍어드리는 사진이라는 설명을 드리자 그제야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이 날 어르신들의 기록을 남겨드리기 위해 세 번째 칸 수연 기록가와, 경미 기록가가 함께해 주셨는데요. 그동안 시현하다에서 어르신분들이 좋아하시던 배경색들도 함께 챙겨 오신 두 분의 열정과, 식을 줄 모르는 텐션 덕분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할 수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늙은이가 뭐가 예쁘다고 찍냐며, 그만 찍으라고 손사래를 치며 수줍어하시던 어르신들도 사진을 보시니 마음에 들으셨는지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으셨어요.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사진 두 장을 두고 고민을 하시는 모습은 마치 시현하다를 찾은 저희의모습과도 겹쳐 보여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어르신들은 오늘 하루 기록을 남기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유혹에 빠지지 말고 좀 열심히,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죠.” 


20대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으시다는 윤성무 할아버지. 



“잠자는 듯 갈 수 없을까. 자식에게 신세를 좀 덜 지면 좋을 것 같아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지요. 지금 와서 살아온 걸 생각해 보면 할 말이 많지만, ‘내 인생 최고의 삶이었다’라고 생각해요.” 


오늘 찍은 사진을 집에 가져다 놓는 걸로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으시다는 이복순 할머니부터, 



예쁘다는 말에 소녀 같은 웃음을 지으시던 박정자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이 날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모든 기록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깊지만, 특히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을 남겨드린다는 생각에 여느 때보다 긴장하며 기록을 남겨드린 두 기록가들도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행복할 수 있었어요. 



경미 기록가이번 프로젝트는 드리는 것보다 배워가는 게 많은 시간이었어요. 죽음을 그저 두렵게만 생각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죽음도 결국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만 하는 숙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기록해 드린 사진 한 장에 어르신들이 경험한 오랜 삶의 지혜를 다 담지는 못하지만, 가장 찬란한 순간을 담아드릴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뜻깊은 시간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정숙 할머님이 사진을 받아 보신 후 소녀처럼 웃어 주셨을 때예요. 처음 보는 사진관 직원들과 장수사진을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낯 서면서 두려우셨을 텐데, 마지막에 따스하게 웃어 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기록해 드렸던 모든 분들이 사진 보면서 오래오래 웃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수연 기록가: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그동안 꿈꾸던 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어릴 적부터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봉사를 해오면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왔어요.


사진 찍는 걸 부끄러워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인화된 사진이 갖고 싶다고 하시던 말씀을 듣고, 또 해외봉사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이 본인의 사진을 안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사진관에 오기 힘드신 분들을 찾아가며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항상 마음먹었어요. 


그 첫 시작은 장수사진 콜라보 촬영이 되었어요. 자라면서 키가 커지듯이 살다 보면 느끼게 되는 이런저런 감정들이 얼굴에 주름으로 나타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주름이 더 의미 있고 예쁘고 멋져요.


그래서 어르신들 사진을 보정할 때면 주름 하나 없애기 아까워서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긴 거 같아요. 이번 콜라보 촬영에서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던 순간도 있었는데요. 촬영 시작 전 어머님 긴장을 풀어드리려고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그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들었던 속상했던 말들을 들려주셨어요. 저도 속상해서 웃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촬영과 보정을 해드렸어요.


그리고 액자를 드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쉬는 시간에 지나가는 제 손을 잡아주시며 그동안 사진 찍는다 하면 지레 겁먹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찍어줘서 고맙다고 진작 찍을 걸 그랬다고 해주시는데 그 말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해서 괜히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소중함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보관하고 싶은 기억인데,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이날 시현하다가 남긴 할아버지, 할머님의 기록은 모두 21장. 사진 한 장으로 당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모두 담아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 한 장으로도 어린아이 같이 기뻐하시던 어르신들의 미소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나’라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 분명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시현하다는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한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오늘 남겨드린 기록을 통해, 어르신들의 마지막 기억이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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