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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절의 기록 시현하다 DATE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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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절의 기록

인혁 에디터

8월 15일,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이에요. 광복절의 의미는 이미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 매거진에서는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초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교과서나 TV를 통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보셨겠지만 혹시 어떻게 이분들의 사진이 남아있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대부분 정장을 입고 사진을 찍으셨는지 혹시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그 이유는 바로 ‘독립운동가’라는 신분과 관련이 있어요. 독립혁명가 김산 선생님의 생애를 다룬 ‘아리랑’이라는 자서전을 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의열단원들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그들은 사진 찍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언제나 이번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 초상 사진은 단순한 사진이 아닌,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당당한 순간을 남길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던 거죠. 


당시에는 평범한 인물 사진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역사가 된 독립 운동가들의 초상처럼, 시현하다가 남기는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도 시간이 흘러 돌아본다면 그때를 기억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을 기록하고 있는 사진관으로써, 오늘 매거진에서는 과거 독립운동가분들의 인물 초상 사진을 통해 광복절의 의미를 되짚어 보려고 합니다. 아마 익숙한 얼굴도, 조금은 낯선 얼굴도 보이실 거예요. 독립운동가들의 초상을 보며 그분들의 업적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본다면, 오늘 광복절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실 수 있지 않을까요? 


텍스트, 사람, 벽, 실내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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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결의가 느껴지는 첫 번째 초상은 일본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항일운동을 펼쳤던백정기 의사의 초상 사진이에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커우 공원 의거를 준비하기도 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홍커우 공원 폭탄 의거는 백범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의 ‘임정’과, 이회영과 백정기 의사가 결성한 ‘남화한청연’ 두 세력이 준비했는데요. 


안타깝게도 공원을 출입할 수 있는 입장권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정해진 시각에 홍커우 공원에 들어올 수 없었던 백정기 의사의 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요. 윤봉길 의사는 오전 11시에, 백정기 의사는 오전 10시에 폭탄을 터뜨릴 계획이었다고 하니, 백정기 의사의 거사가 예정대로 일어났다면 어쩌면 우리는 윤봉길 의사의 이름 대신 백정기 의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텍스트, 가장, 오래된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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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초상 사진은 익숙하실 거예요. 앞서 언급했던 바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 전 촬영한 초상 사진이에요. 의거를 위해 훙커우 공원으로 떠나기 전, 왼손에는 수류탄과 오른손에는 권총을 들고 태극기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에요. 옷에 붙어 있는 종이는 목숨을 거둘 때 남기는 말이 적힌 절명사라고 해요. 


이 사진을 찍고 난 후,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제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폭탄을 투척하며 의거에 성공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저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텍스트, 사람, 가장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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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디선가 우렁찬 만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유관순 열사의 초상이에요. 이 사진은 일제가 만든 감시 대상 인물카드에 첨부된 사진으로,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해요. 사진 앞에는 유관순 열사의 죄수 번호, 371번이 한자로 쓰여있네요. 


아우내 만세운동에 참여해 5년을 구형 받은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 끝에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끝내 서대문 형무소 감방에서 순국하시게 됩니다. 이때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18살이 채 되지 않았어요. 


텍스트, 사람, 오래된, 빈티지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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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봤던 초상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 사진은 박열 의사와,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재판 중 감옥에서 촬영한 사진이에요. 죄수라는 신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얼굴. 지금 봐도 일제시대에 찍힌 사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사진이에요. 


이 사진 외에도 법정에서 조선의 전통 관복을 입고, 일본어가 아닌 조선말로 재판을 받는 등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던 박열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 23년간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늘의 광복절이 있기까지 몸과 마음을 바치신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초상을 만나봤는데요, 어떠셨나요?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이분들의 존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기록, 특히 사진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시현하다에서는 지금 담아내고 있는 모든 대중들의 초상사진 역시 훗날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필요에 의해, 혹은 가볍게 나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남겨진 사진일지라도 개인이 살아온 역사에 따라 사진이 주는 의미는 남달라지는 것 같아요. 바로 오늘 여러분이 만나봤던 독립운동가분들의 초상처럼 말이에요.